고독한 시월의 밤 기타

사람 쉽게 안 죽는다고들 한다.
그러나 너무나도 어이 없게 세상을 뜨는 사람들이 워낙 많은지라 잘 안믿기기도 한다.
우리가 발딛고 사는 이 사회, 이 나라는 도대체 얼마나 안정적인지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다.
계기만 있으면 와르르 무너지는 불안정한 상태인건지 왠만큼 충격을 받아도 원상복구되는 오뚜기 같은 상태인 건지 실험을 해 볼 수도 없으니 뭔가 답을 얻으려면 역사 속에서 밖에는 찾을 곳이 없을 것 같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 역시도 절대적인 답을 주진 못한다.
느닷없이 멸망해 버린 문명이나 대제국이 상당히 많은 반면 인류 문명 자체는 어쨌거나 끊임없이 이어져오고 있고 잣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여러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고도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봤다.
평행우주이론에 입각하면 우리 인류처럼 생존에 상당한 수준의 항상성을 필요로 하는 생물이 출현한 우주는 항상성 우주('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의 개념을 빌려와서)가 아닐까 하고.
이 이론(?)에 바탕을 두면 젤라즈니의 유쾌하다면 유쾌한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예약돼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개방자들이 무슨 짓을 하건간에 이 우주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는 거다.
그러니 안심하고 스너프와 그레이모크의 활약을 즐거워할지어다.
개를 좋아하는 자는 스너프의 우직함을 고양이를 좋아하는 자는 그레이모크의 사랑스러움을 만끽해보도록.
소수자를 위해 뱀, 쥐, 올빼미, 박쥐, 다람쥐들도 등장하니 취향대로 골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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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은의 감성터치 기타

라디오 수신이 형편없어서 뭐 좀 잡힐까 싶어 튜너를 별도로 샀는데 동네의 문제인지 여~엉 별로인데 우연히 이 '석지은의 감성터치'라는 프로그램을 듣게 됐습니다. (그전에 쓰던 Teac 라디오는 99.9가 안나왔는데 새로 산 Aura note의 튜너에는 잡히더군요.)
'헤헤'도 아니고 '후훗'도 아니고 '히히'도 아닌 아주 묘한 웃음 소리를 내는 DJ가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 '거참 어색하기도 하다'라는 느낌이었는데 말이죠. 말투도 그렇고.
몇번 듣다보니 이게 참 중독성이 있습니다.
억양이 꽤나 독특해서 혼자 있을 때 자꾸 따라하게 돼요.
출근을 해야 해서 2시까지는 못듣고 보통 1시까지는 듣는 편인데 반쯤 팬이 된 것 같습니다.
오늘 밤엔 사무실에서 일은 안하고 '석지은', '감성터치', '석지은의 감성터치'로 온갖 검색엔진에서 뒤져보고 있습니다.
목소리는 감기 걸린 것처럼 약간 답답하고 무거워서 듣고 있으면 잠이 솔솔 올만 한데 의외로 몰입도가 높습니다.
그러니까... 따라하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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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The Battle for Spain) 기타

1995년에 '풀무질'에서 출간된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가지고 있는데 당시에는 지금처럼 사두고서 몇달 혹은 몇년 뒤에 읽는 버릇이 없었으니 아마 바로 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당시에 내용을 얼만큼 이해했을까 더듬어 보면 역시 별로 기억은 안나지만 이해도가 깊었을 리는 없다.
기본적으로 스페인 내전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해서였는데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으면서 스페인 내전을 모른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15년 전의 내가 아니니 나에게는 최근 읽은 '안토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이 있는 것이다.

700여 페이지에 걸쳐 1936년부터 1939년까지의 내전 기간을 상세히 기술한 이 책이 내게는 그야말로 보물같은 참고서가 되어 주었다.
'스페인 내전'을 읽고 나서야 인민전선의 각 당파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조지 오웰이 참전한 기간의 내전 상황을 개괄할 수 있게 되었다.
조지 오웰이 말하곤 하던 스페인 식의 비능률과 엉성함, 지루한 전쟁 이야기가 실은 아라곤 전선의 일정 기간의 현상일 뿐이었으며 당시 바스크와 마드리드에서는 그야말로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가 부상을 당해 초기에 이탈했던 우에스카 전투도 공화군에게 엄청난 손실을 가져다 준 전투였다.

그러니 다양하게 읽고 볼 일이다.
'스페인 내전'을 읽지 않았으면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작가의 대표작들을 포기할 뻔 했다.
'동물농장'과 '1984'의 정치적 함의는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지 않고는 부분적으로 파악될 수 밖에 없으며 스페인 내전을 모르면 '카탈로니아 찬가'가 호사가의 피상적인 경험담에 그치고 말게 된다.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P. S.
좀 뜬금 없지만 스페인 내전을 재료로 작금의 리비아 내전을 해석해 보자.
왜 자유민주주의의 선봉이라는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은 리비아 정부군이 반군을 도륙하고 있을 때는 조용하다가 사태가 다 끝나고 이제서야 조치를 취하는 척하는 것일까?
첫째, 시민혁명이 친미 국가까지 번져가는 것이 마땅치 않을 것은 명약관화하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선에서는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이다.
둘째, 카다피를 수반으로 하는 독재 정권(비록 자유민주주의의 이념과 엄청나게 괴리되어 있지만 국경을 벗어나면 자유민주주의 이념은 자국의 국익에 도움이 될 때만 활용된다. 이라크의 예를 보라.)과 시민 혁명에 의해 들어설 정부의 불확실성을 저울의 양쪽에 얹어 무게를 재야 했을 것이다.
스페인 내전에서 인민전선의 궁극적 패배를 가져온 영국, 프랑스 등의 불간섭주의가 실은 영국, 프랑스 지배층이 노동자 정권보다는 파시즘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라는 것과 유사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대지진으로 국제 정세가 어떻게 격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리비아를 변수로 추가해서 초래될 혼란을 견디느니 자신들의 이념과는 다르지만 기존의 틀에서 파악하고 협상할 수 있는 독재자가 편리할 것으로 보인다.
약간의 제스쳐로 체면치레 정도만 하면 되는 것이고 그 수준이 현재의 비행금지구역 설정 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들은 카다피 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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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스내처(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SF

딱 꼬집어 근거를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아는 사람들이 원래의 사람이 아닌 가짜로 바뀌어 있다! 외형은
완벽하고 기억도 제대로이지만 조잡한 복제품이라는 혐오감이 든다. 게다가 그 가짜들은 자기들끼리
공모해서 진짜배기들을 없애고 자기들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익숙한 일상이 어느 순간 낯선 이들이 점거한 낯선 풍경이 돼 버리는 것에서 출발한 공포는 점점 물리적인
양상을 띄고 급기야 총격전과 감금으로 이어지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흘러간다. 여기서 등장하는 물러터진
악당(주인공의 친구인 정신과 의사 매니)이 영 김을 빼버리긴 하지만 파랗고 노란 배지를 단 '그들'에게
합류하는 것이 실제로 큰 변화를 느끼지는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개연성이 아주 없다고는 못하겠다.

고치(에일리언의 알에 해당하는)에 휘발유를 끼얹어 태워버리는 주인공의 저항에 그저 선선히 우주로 다시
떠나버리는 그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안돼 보인다. 어미 에일리언은 그로 인해 끝없는 복수의 여정을 시작
했는데 말이다.

그러니... 진짜 악당은 못된다.

SF라기보다는 호러나 판타지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출간된 후 시간이 꽤 지나고 보니 그 호러라는
것이 영 시덥지 않다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P. S.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밀밸리(Mill valley)라는 중소도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금문교를 넘어 북쪽으로 조금
가면 나오는 실제 도시이다. 올 3월에 컨퍼런스 관계로 샌프란시스코에 갔는데 그때 가봤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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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신과 다윈의 시대 기타

EBS '신과 다윈의 시대'를 술 때문에 본방을 놓치고 토요일 재방송을 봤습니다. 두 편 연속으로 방송하니
재방송이 더 좋습니다. 맥락도 놓치지 않고. 요즘은 기억력이 쇠퇴해서 이틀 연속 뭘 보면 전날 내용이 좀
가물가물해서...

1편은 종교의 입장에서 과학을 바라보고 2편은 반대로 과학의 입장에서 종교를 바라본다는 야심찬 기획은
좋았지만 실제 완성물을 놓고 보면 결국 전형적인 NOMA로 흘러가버려 뭔가 맥이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역시 우리 사회는 논쟁을 피하는 사회라고 할까요. 기왕에 시작한 일이니 아예 불을 붙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뭐. 무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간 읽은 여러 책의 저자로 또는 인용자로 등장한 사람들이 직접 얘기해주니 그건 좋았습니다. 리차드
도킨스나 에드워드 윌슨, 알리스터 맥그라스, 마이클 비히 같은 사람들 말이죠. 요즘 스티븐 제이 굴드의
책을 읽고 있는데 이미 세상을 떠나서 화면으로도 만나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굴드는 정말이지
책을 재미있게 쓰더군요.

한동대 교양 필수 과목으로 창조론과 진화론을 대비해서 배운다면서 나오는 인터뷰에서 어느 여학생의
발언을 듣고 나니 좀 멍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엄연히 창조론이라는 다른 이론이 있는데 진화론만 맞다고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가르친 것에 대해 화가 난다고 합니다. 반대되는 이론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부류가
있다 하여 학교에서 그것을 모두 가르쳐야 되는 것이었던가요? 우주의 탄생에 대한 수많은 신화와 설화를
다 가르쳐야 하는 걸까요? 제가 보기에 소금을 만드는 맷돌이 바다에 가라앉아 바다가 짜졌다는 옛날
얘기와 신이 7일동안 우주와 생명을 창조했다는 얘기는 동일한 수준인데요. 자료를 좀 더 찾아보고 스스로
생각을 해 보면 그렇게 화낼일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인터뷰 중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무신론자들이 주기적으로 모여
도킨스의 비디오를 보면서 예배를 본다는 내용인데요. 무신론이 종교의 모습을 갖춰 간다는 얘기였습니다.
농담일까 생각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새롭게 등장한 신참 경쟁자를 바라보는 기존 시장의
지배자의 우려가 그런 음모론의 형태로 나타난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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